2018년 가을, 도서부에서 회식을 했다. 회식장소는 무제한으로 삼겹살을 먹을 수 있는 음식점이었다. 테이블에 앉아 고기가 나오길 기다리며 나는 1학년 후배들이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다.
"전에 고깃집 알바하던 사람으로서 이 음식점은 어떠냐?"
"나름 괜찮은 듯."
'고깃집에서 알바도 했으니 참 대단하다.'라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 후배의 말이 내 귀에 꽂혔다.
"요새 행복하지가 않아. 학교 끝나고 집에 오면 방과 후에 할 것이 없어."
나는 이 말을 듣고 되게 놀랐다. 도서부에서 나름 긍정적인 후배인데, 왜 행복하지 않을까?
내가 첫 번째로 고민해본 것은 성적이었다. 나는 평균 등급이 2등급이라 성적이 떨어질 것이라는 압박감, 성적을 더 올리지 못했다는 안타까움에서 제일 큰 스트레스를 받았다. 하지만 이 후배의 평균 등급은 6등급이었다. 올라갈 곳은 많은데, 내려가기도 쉽지 않은 등급이다. 이 때문에 성적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없어 행복할 것이라 생각했다. 아, 물론 성적이 잘 안 나오는 것에 대한 스트레스는 있겠다.
두 번째로 고민한 것은 친구관계이다. 나는 친구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약간 있었다. '왜 이 친구는 나랑 같이 밥을 안 먹을까?'라는 간단한 궁금함에도 스트레스를 받았다. 하지만 이 후배의 친구관계는 나쁘지 않았다. 친구들과 같이 도서부에 들어왔고, 반에서는 애칭도 있었다. 한 번도 밥을 혼자 먹은 적이 없다.
세 번째로 고민해본 것은 돈이었다. 용돈을 받으며 살지만, 이 용돈은 들고나가서 풍족하게 사 먹거나 게임을 하기에는 부족했으리라. 이 점은 나도 공감한다. 하지만 고깃집에서 알바도 했을 정도이면, 용돈을 나름 모았을 텐데, 왜 행복하지 않을까. 더 벌지 못한 것에 대한 슬픔일까.
그래서 네 번째로 고민한 것은 미래에 대한 걱정이었다. 일반고 5등급이라는 점수를 들고 갈수 있는 대학은 지방대이다. 이런 미래에 대한 불안이었을까. 하지만 우리 학교는 4년제 고등학교라고 불릴 만큼 재수생이 많다. 재수를 하면 인서울에도 갈 수 있다. 그렇다면 재수를 할 수 없는 이유라도 있을까.
후배의 행복을 위해 4가지 생각을 해봤지만, 행복해지는 방법을 찾지 못했다. 왜냐하면 내 기준에서 후배는 내가 가지지 못한 것을 가진 '행복한 사람'이었기 때문이다. 성적을 올리기 쉽고, 친구가 많고, 알바 경험도 있으니 내 기준으로는 행복하지 않는 게 이상한 것이었다. 바꿔서 보면 누군가에게 나는 가지지 못한 것을 가진 '행복한 사람'으로 보일 것이다. 하지만 난 행복하지 않다. 내가 가진 것보다 가지지 못한 게 너무 많아서이다. 욕심을 버리려면 어떻게 해야할까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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